너는 내 운명…만‘개’하는 반려견 문화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개와 인간의 운명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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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는 특히 인간의 사랑을 유발하는 용모로 눈길을 끈다.

 

“우리 ‘아이’ 녀석 덕분에 갱년기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아니 너도 그랬니, 어쩜 나하고 아주 똑같아. ‘사랑’이가 없었다면 나 병 걸렸을 지도 몰라. “

10여 년 만에 만난 사촌 자매가 ‘개 즐거움’에 맞장구를 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랜만에 모국을 방문한 사촌 언니와 세종에 사는 동생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간의 회포를 푸는데, 대화가 온통 개 얘기다.

“아빠, 우리 ‘몽실이’ 잘 있지. 이번 주에 집에 갈까 하는데 엄마 아빠는 주말 일정이 어때?” 지난해 가을 혼인한 20대 후반의 한 여성은 분주한 신혼생활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시골의 친정에 전화해 ‘개 안부’를 묻는다.

허니문 베이비에 혹시라도 나쁜 영향이 있을까 봐, 개와 접촉을 의식적으로 피하지만 마음은 항시 ‘안달’이다.  친정에 전화하면 부모 안부보다 처녀 때 한 침대에서 자곤 했던 개 소식을 묻기에 바쁘다.

30~40대 이상 연령층들이라면 최근 십 수년 사이에 크게 달라진 반려동물 문화를 체감하고 있을 것 같다. 시기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지만, 대략 2000년대 들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늘기 시작한 탓이다.

후대 사가들이 2000년대 한국사회의 주요 면모 중 하나로 반려동물 문화를 꼽을지 모를 만큼 애견 혹은 애묘는 눈에 띄는 생활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구미나 일본 역시 비슷한 상황이어서, 그네들의 경우 반려동물 문화가 만개했거나 절정을 막 지났을 수도 있다.

반려동물 문화의 확산을 주도한 건 두말할 나위 없이 대표동물 격인 개다.  애견 동물병원, 애견 용품점을 지방 소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애견 문화는 이제 비즈니스 영역과도 맞닿아 있을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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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성격이 제각각인데 유달리 사교적인 개가 있는가 하면 사람과 상대적으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개체들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나의 가족 구성원’으로 까지 인식되는 개의 숫자가 근사하게나마 알려진 적이 없다. 그저 애견 산업의 규모나 동물등록제에 따른 신고 숫자를 기초로 국내 개 수는 150만~400만 마리 수준일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헌데 사람 중심으로 반려견 문화를 들여다 보면, 양적 규모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개 한 마리에 사람 하나가 아닌, 개 한 마리에 한 가족을 상정할 경우 이른바 ‘애견인’들 숫자는 500만 명, 많게는 700만~800만 명까지 내다보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인기가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 의지에 의해 상당부분 좌우될 거라는 반 우스개 소리가 나돌 정도로 애견인구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최근 십 수 년 혹은 수십 년 사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공통 현상이나 다름 없는 애견 문화의 폭발적 확산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표면적인 이유는 경제적 풍요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예컨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내외에 이를 즈음 개 입양 등이 사회적으로 활발해지는 게 방증이 될 수 있다.

개를 키우는 데는 직접적인 비용, 즉 먹이 구입,  질병의 예방과 치료 등에 적잖은 돈이 든다. 이 못지 않게 큰 부분은 시간을 할애 해야 하므로 노동시간이 줄어들 수 있고 이에 따른 기회비용 차원의 손실이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만으로는 애견 문화의 확산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개와 인간의 운명적 관계를 고려하면, 경제적 여유는 그저 시기의 문제일 뿐 애견 문화의 도래는 예정됐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는 유전적 차원 즉, DNA 수준에서 인간과 연계돼 있다. 좀 단순하게 과장하면 남녀의 사랑이 예정돼 있듯, 개와 사람은 호혜 혹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서로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개는 최초의 가축으로서 소나 돼지 닭 등에 훨씬 앞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고 키워졌다. 고고학적 증거로 개가 길들여졌거나 인간 무리의 일원이 된 것은 1만5000년 전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석기 시대 개는 인간과 함께 사냥을 하고 또 같이 주거를 옮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학자들은 늑대 가운데 유달리 사교적인 ‘성격’을 가진 녀석들이 늑대 무리에서 빠져 나와 인간이 던져주는 동물의 뼈나 살 가죽 등을 얻어 먹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길들여지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본다.

개는 그 다양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늑대와 교배가 된다. 또 늑대와 개의 혼혈인 이른바 ‘늑대 개’들끼리도 다시 교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개와 늑대는 염색체 차원에서 동일성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3788늑대와 개의 혼혈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쿤밍독. 개와 늑대는 생물학적으로 교배되는 사실상 동일한 개체이지만, 사교성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사진=빅스티브)

 

말과 당나귀의 교배로 태어난 노새끼리는 교미를 한다 해도 새끼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늑대 개는 개와 늑대가 유전적으로 사실상 동일한 생명체라고 할 만큼 가깝다.

그럼에도 개는 늑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인간과 ‘사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 사이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개에게는 인간과 매우 유사한 ‘사교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표적인 사교 유전자로 인간의 경우 자폐증과 연관된 부위가 꼽힌다.

사람의 사교성에 개인 차가 있듯이 개들 또한 사교적인 정도가 다르다. 극단적으로 나 아닌 개체와 어울려 지내기 어려운 자폐증의 경우 유전자의 이상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개에게도 바로 사람의 사교 유전자와 유사한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진 바 있다.

개와 늑대의 지능 수준이 엇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개가 인간과 친하게 된 데는 개만이 가진 사교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이뤄진 개와 늑대 비교 실험에 따르면, 개는 늑대보다 인간을 훨씬 더 신뢰하며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 변화 등을 읽어내는 선천적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예로 개는 사람이 장난을 치기 위해 먹이를 줬다가 일부러 빼앗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인간의 의도 즉 본심을 읽어내려 한다.

하지만 늑대는 동일한 실험에서 공격성을 감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는 사람이 심각한지 장난을 하려 드는지, 혹은 우울한지 즐거운지 등의 표정과 몸짓을 본능적으로 읽어내는 일종의 ‘촉’을 발달시켜왔다는 얘기이다.

최근 들어 사람과 개의 관계를 주종보다는 반려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개와 인간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진화해 왔다는 점과도 대체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개와 사람의 호혜적인 관계는 서로 호르몬이 작용하는 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학자들은 최근 ‘사랑 호르몬’으로 널리 알려진 ‘옥시토신’(oxytocin)이 사람과 개 사이의 유대관계가 강화될 때도 분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옥시토신은 남녀간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아이를 임신하면서 또 출산 후 집중적 작용하는 호르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산모와 신생아를 결속시키는 데 옥시토신이 커다란 공헌을 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헌데 이 옥시토신이 개를 쓰다듬거나 안아주는 등의 행동을 할 때도 분비된다는 점이 최근 확인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뿐만 아니라 개한테서도 사람한테 사랑을 받을 때 옥시토신이 분출된다는 사실이다.

인간과 개의 관계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진화해 온 아주 특수한 관계인 것이다.

자연계에 적대적인 관계, 즉 천적의 존재는 널리 알려져 있고 이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화를 거듭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종의 동물끼리 호르몬이라는 미묘하고도 미세한 수준에서 호혜적으로 교류하는 예는 찾기가 쉽지 않다.

최근 수십 년 사이 애견 문화의 도래와 확산은 그러므로 예정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여건이 뒷받침해줄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혼인과 출산이 줄어들 듯, 애견 문화 역시 환경이 변하면 위축될 확률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과 개의 생물학적 유대관계의 특수성에 고려하면, 언제든지 거듭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게 바로 반려견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김창엽◆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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